만일 분열증이 보편적이라면, 위대한 예술가란 바로 분열증의 벽을 뛰어넘어 미지의 영역에 도달한 자이다. 이곳에서 그는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시간에도, 그 어떤 장소에도, 그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_질 들뢰즈, 펠릭스 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급속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르는 수평적 분화와 공공적 공유가 충분히 성취되지 못한 지금 시대의 현실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우울하기 그지없다. 자본의 급속한 성장과 증식은 효율과 합리성, 민주주의의 수사를 남발하고 있지만, 현실의 삶은 모순과 파편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만 같다. 화려한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욕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본의 외피와는 달리, 그 속내는 불균등한 가치의 분배로 인한 사회적 분열의 아우성으로 들끓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의미에서의 분열이 보편화되고 있는 셈인데, 아이를 낳지 않고, 노년이 불안하기만 한 이 시절, 특히나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불안은 그 해법조차 강구하지 못할 정도로 표류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그들을 결핍된 존재로, 혹은 사회의 잉여적 존재로 양산하는 것은 이 시대의 근본적인 모순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순응적인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하고 엄혹한 현실 속에서 모순은 다시 가중될 뿐이다.
문화 예술이라고 예외일까? 최근 한국의 문화예술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사회적 처우와 존재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도 이러한 배경에서 작동한다. 이들의 함성은 단순히 경제적인 대가와 보상차원의 것들이 아니라 미래를 박탈해가는 사회 속에서 그들이 처해있는 존재로서의 불안에서 기인할 것이다.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러나 미쳐지지 않는 이중 구속의 현실 속에서 그들의 삶, 혹은 작업들조차 서서히 표류해간다. 물론 예외는 있고, 몇몇 작가는 하수산한 시절의 비밀과 운을 따라 간혹 승승장구도 할 것이며, 작가로서의 안정적인 삶은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지극히 예외적인 현실로 작동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미쳐버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속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치는 길도 여럿이고, 그 길에도 격이 있을 터, 이런 광기의 차원을 단순한 시대의 흐름 속에 귀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지평 속에서 넓히고, 깊이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우문을 던지면서 이번 전시가 기획되었다.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제대로, 혹은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끝까지, 갈 데까지 미쳐보는 것도, 이 미친 사회에 대한 어떤 항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 ‹癲 미칠, 전_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은 1999년 이래 새로운 대안 미술문화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온 대안공간 루프가 그간 익히 알려진 오래된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달라진 시대변화의 흐름을 함께 공감하고 호흡하고자 하는 각별한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동시대 사회문화의 미세한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임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늘 젊은 감각으로 지속되는 대안공간 본연의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 마련한 전시인 것이다. 이를 위해 이번 전시는 대안공간 루프의 젊은 기획자인 문두성, 백수혜, 이재윤의 같은 세대에 대한 감각적인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전시의 생동감과 현실감을 증폭시키고자 했다. 전시의 제목에 대한 착상은, 이인성의 1995년 동명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다. 언어적 한계를 넘어 그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포착하려 했던 소설처럼, 이번 전시 역시 동시대 작가들의 한계적 상황을 가시화시키고, 그 가시화된 상황 이면의 것들을 천착하려 한다. 미쳐버리고 싶은 것은 처절하기만 한 심리적이고 무의식적인 욕망의 문제로 이어지지만 이러한 욕망조차도 사실 덧없는 것일 터, 미쳐지지 않는, 곧 실존적 조건과 끈덕지게 대면하게 되는 집요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기 마련이다. 희망이라는 덧없음을 존재 자체의 허무로 인정하고, 이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통찰 속에서 다시 맥락화 시키는 소설처럼, 이번 전시 역시 동시대 작가들의 ‘미침’의 현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혹은 쿨 하게 인정하고) 그 이면의 미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과 그 기운, 에너지를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게 정상적 사회의 타자로 취급받는 광기의 존재론적이고 역사화 된 호명을 2015년 지금, 여기의 사회적 현실로 다시 끌어들여, 이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소설이 소용돌이치는 시간 속에서 미쳐버리고 싶으나, 미쳐지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쫓는 구법(求法) 여행인 것처럼, 그저 똘끼로 충만하고 미친 것만 같은 작가들 개개인을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미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그 이면의 것들, 그 불안한 사회적인 존재론을 향한 다양한 시론들을 펼쳐 내고자 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역시 각기 다른 이유들을 속내로 하여 다기한 형태의, 이른바 광기들을 보여준다. 대게는 개인적 고민들로 인한 것이겠지만, 그 조차도 사회의 모순적인 현실, 사회, 문화, 정치라는 기존 제도의 힘겨운 굴레에 뿌리를 두고 자라난 것들이다. 그렇게 젊은 작가로서 힘든 삶을 겪어야 하는 이들 세대의 고민과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알고 싶을 때, 거울 앞에 설 것이 아니라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한다’는 경구처럼, 이번 전시도 기발하고 엉뚱하기만 개별 작품들은 물론, 더 나아가 이를 매개로 하여 이들이 미쳐 버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의 다양한 면모들을 (그리고 그 속내와 이면들까지) 탐색하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 문화적 상황과 맥락들을 가시화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전략적인 광기의 상태가 비록 기존 사회의 지배적이고 규준적인 질서나 정상성에 반하는 것이겠지만, 역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자극이고 매개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미쳐지지 않는 그 어떤 것들을 우리는 갖고 있기 때문이고, 이번 전시가 탐색하고 싶은 지점 역시 외면의 광기 내부에 깊숙이 자리하는 어떤 가치들, 그 잠재적인 가능성들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 표면이거나 주변의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풍경들일 수도 있겠다. 내부이건 외부이건, 이런 징후들을 담으려 하는 그 태도만으로, 긍정적인 발걸음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현상과 징후들을 바라보는 우리 스스로도 얼마간 사회의 규범적인 시선과 거리를 둔 체, 얼마간 미쳐 있단 느낌마저 드는데, 생각해보면 우리보다 더 미친 저 괴물 같은 현실보다는 덜 미쳐있다는 점에서 얼마간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나마 미칠 수 있어서 우리는 세상이라는 굴레로부터 한껏 자유로울 수 있고, 그 나마 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런 공감의 정치학 혹은 이른바 (위반과 저항으로서의) 광기, 비정상성 개념이 새롭게 요청되는 그런 시절, 아무쪼록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모두 한바탕 제대로 미쳐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대안공간 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