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에서 미래의 기술 시대에 대해 예견했다. 컴퓨터와 정보통신을 기반으로 한 제3차 산업혁명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듯했다. 최첨단 기계는 인간의 육체적 소모를 대신했고, 시장은 생산과 이윤 창출을 위한 신기술에 집중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불리는 현재, 인공지능 Chat GPT의 지능은 인간의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지적 콘텐츠를 창출하는 일마저 대신하고 있다. 분석, 통계, 요약, 정리, 번역, 교정 등의 보편적 프로그램 업무는 인간보다 뛰어난 수준의 능력을 구사하며, 문학, 철학, 미학적 메타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 해결 기능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무한 경쟁과 노동환경의 변화, 성장에만 집중한 기술 발전이 실업률을 증가시키고 집단의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는 1990년대부터 있었다.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현재 인간의 삶은 유토피아일까. 정찬민은 효율 중심의 맹목적인 성장 압박이 인간에게 주는 피로감과 무기력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 <행동 부피>는 성장과 생산성 위주로 위계 지어진 일상의 행동에서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신체의 움직임, 루틴한 패턴들에 가치를 부여한다. 경제 가치를 창출해야만 하는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소외된 행동을 발견하고 기록해 이를 시각화한다.
천으로 된 8개의 대형 풍선, 선풍기와 모터로 구성된 설치 구조물 <행동 부피>에는 64명의 하루가 담겨있다. 소속, 성별, 나이, 이념과 무관한 대중의 행동Mass Action을 수집한다. 산책, 기도, 커피 마시기, 영어 공부, 라이딩, 영양제 섭취, 다이어리 쓰기 등의 개인별 루틴은 각 행동마다 지속한 시간만큼 부피로 환산되어 풍선의 크기를 결정한다. 오랜 시간을 소비한 행동일수록 풍선은 커지고, 오래 지속된다. 예를 들어, 경제 가치와 아무 상관 없는 다이어리 쓰기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개인의 가치로 표현된다.
<행동 부피를 위한 탑>은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실제로 받았던 택배 상자를 3D로 촬영해 만들어진 탑이다. 플랫폼 발달과 비대면 경제는 택배 시스템을 과중시켰고, 쌓여가는 택배 상자는 작가의 일상에 그 자체로 기록물이 되었다. <들은 모양>은 작가가 이동하는 발걸음 소리를 수집해 데이터로 변환한 뒤 데이터의 형상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작업이다.
기술 발전은 노동의 종말을 예견했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위기의식과 함께 인간으로서 무기력함을 주었다. 정찬민은 일상의 리듬이 깨지자, 성장만을 강요하는 주위의 압박에서 벗어나 소외되는 지점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사과 반쪽을 먹고,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한다. 비정규적인 경제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고, 무릎과 발목을 마사지한다. 사회의 성장 질서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반복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삶을 산다.
자본의 축적과 개인의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정찬민은 맹목적인 목표 지향이나 목적 달성, 성과를 위한 삶보다 ‘행동함’, ‘행동하고 있음’ 자체로 스스로의 존재를 회복했다고 말한다. 휩쓸려 끌려가듯 살았던 일상에서 소외되고 평범한 행동을 관찰하며 제 속도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작가는 기계가 아닌 인간의 노동,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움직임, 경제 가치와 무관한 우리의 모든 행동에 주목한다.
글: 이선미,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정찬민 (b, 1991-)
뉴미디어를 활용해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몸동작을 드로잉과 조형물로 물질화한 <현상된 움직임 2021>를 시작으로, 핸드폰 사용 시 나타나는 손의 모양을 수집한 <결국 우린 닮은 모양, 2021>, 플랫폼 기술 발전과 비대면 경제활동의 증가로 인해 과중 된 택배 노동을 관망하는 <우리가 닮아가는 건, 2021>, 건조기로 인해 불필요한 행동이 된 빨래터는 동작을 활용한 <건조기 모르게 추는 춤, 2022>등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작품들이 가진 신체적 경험이나 감각, 물리적 현상과 같은 무형의 비가시적인 경험(요소)을 가시화하려는 접근과 구조는 작가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증거물이자 효율 중심의 기술 진화 과정에서 물리적인 세계(경험)가 누락되거나 단축되는 현상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다.
Chanmin Jeong (b, 1991-)
Chanmin Jeong visualizes physical experiences composed of images and data using new media. In <Developed Movement, 2021>, She focused on the process of making photographs and the experiences of the producers. In the works of <Afterall, we look alike, 2021>, <Dancing without knowing Dryer, 2022> she collected hand shapes that appear when using a mobile phone or action of washing that have become unnecessary due to the dryer. After that, <The story that we are becoming alike, 2021> is a work that observes the heavy delivery labor due to the development of platform technology and the increase in contactless economy. Through this, she suggests ways of using the body and social phenomena that are changing with the development of tech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