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 Two In One
Su Ran Choi, Young Tae Ko
1999/07/31 – 1999/08/12

최수란, 고영태 2인전

참여 작가: 최수란, 고영태
장소: 대안공간 루프
주최/주관: 대안공간 루프

Lovely Two In One

Artists: Su Ran Choi, Young Tae Ko
Venue: Alternative Space LOOP
Organized by: Alternative Space LOOP

총각화가 강영민이 요모조모 따져본, 최수란과 고영태의 부부전의 관계

러브리 투 인 원. 한국말로 ‘둘이 하나로 사랑스러운’이란 뜻이다. 그렇게 봐 달란 말인지 그게 아니란 말인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그렇게 봐 달란 말 아닐까… 뜬금없을지는 몰라도, 옛날 옛적, 종종있던 전시형식인 부부전(부부가 화가인데 같이 전시를 하면 부부전이라 한다. 비슷한 형식으로 모녀전, 부자전도 가능하다.)을 떠올려 본다… 과연 부부가 같이 전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인 이유일까? 아니면 성격이 예민한 화가 둘이 서로 사이좋게 전시를 함으로써- 한다는 것만이라도- 금실을 과시하기 위함인가. 후자의 경우 속설에 민감한 관객이라면 둘사이의 힘의 역학 관계를 요모조모 따져보는 숨은 재미도 느낄 수 있겠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부가 화가인 경우의 속설로는 “사이가 좋지 않을 것이다-이혼한 경우가 많으니까… 또는 둘중하나 잘나가서 한 사람이 기를 빼앗긴다.” 정도이다. 부부전이란 전시 형식은 이런 속설들을 힘안들이고, 보기좋게 존중하며 무시하는 속셈-어쩌란 말이냐?! 우린 이미 부부인걸..-에서 나온 다소 품위있는 전시 형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최수란과 고영태로 돌아가서, 물론 이들은 부부가 아니다. 신출내기 작가들이라서 둘사이의 어떤 역학도 없다-왜없겠나. 다만 둘 사이의 문제이다-젋은 작가들의 데뷰전이니 애정을 가지고 봐달라는 뜻에서 러브리란 말을 갖다 붙였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전시의 메세지를 대변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전시로 보자면야 최수란의 작품은 러브리하기보단 디스거스팅하고 고영태의 이번 작품 이미지-고영태는 전시장 벽면에 자신의 점박이 인체 이미지를 설치한다- 러브리란 말을 붙이기는 힘들법하다.

부부전의 경우에야 추측가능한 몇가지의 이유(전시동기)가 나올법한데 최수란과 고영태, 이 둘의 작업을 같이 기획하는 의도가 뭔지 사실 오리무중이다. 유사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옷을 벗는다. 보디 페인팅을 한다인데-사실 이 두작가의 조우는 기획전을 위하여 루프가 주선했다-단지 이 두가지 형식의 유사점만으로…-최수란의 말을 빌자며는 자신의 사진 작품은 다분히 여성의 성해방-또는 개방-(최수란은 그 단초로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성적으로 억압당하는 여성의 이미지와 그걸 극복하고자하는 –사진의 여성이미지는 아직 그걸 극복한 것같진 않아보인다- 몸부림치는 여자이미지를 사용한다)-을 메세지로 하고, 고영태 본인은 자신이 옷벗고 보디페인팅하는 이유가 자신의 벗은 몸을 하나의 미디엄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지, 성이나 어떤 특정한 메세지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한다.

   

그 근거로 고영태는 최수란과의 공동작업을 위해 기꺼이 머리를 밀고 나타났다고 한다. 고영태는 메세지는 미디어고 미디어는 내 몸뚱이다라고 주장라는 듯하다. 그러니까 비디오 작가와 모니터가 만났을때 비디오작가는 자신의 메세지 전달을 위해 모니터가 필요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고영태의 몸에 그렇게 색칠을 해댔던 보디페인팅 아티스트들과 최수란에게는 고영태의 몸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니터는 인격체가 아니지만 고영태는 엄연한 한 사람의 인격체이므로 공동작업에 당당히 이름을 내밀 수 있다…? 그렇게 하고자하는 그 동기가 아름답다…?

어찌됐건 고영태는 아직-그렇다 ‘아직’이다-발언하는 아티스트는 아닌 것 같다. 스스로도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않는다 했다. 뭐 고영태가 주로 활동했다던 그 언더바닥에서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미디어로 내주는 희생정신(적어도 내가 보기엔)은 희소성과 시사점이 있는 거 같긴 하다. 그동안 고영태가 우리의 눈길을 더 끌었던 이유도 또한, 비디오 작가의 작품이 시원찮을때 잘빠진 모니터 외관이 오히려 우리 눈을 더 끄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아무튼 고영태의 지금까지의 메세지를 정리해보면 “나는 미디어다. 그러나 나는 인격체-아!인간-이므로 미디어가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미디어가 되 주지않나.”라는 팽팽하고도 억울한 긴장감(인간이기때문에)을 짐짓 우리에게 던져주는 듯 하다.

허락한다면 다시 부부전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겐 이미 어떤 느긋함이 잇다. 최소한 그들의 관계는 부부아닌가.. 아 그 부부의 비밀스런 관계란.. 나 같은 총각이 어찌 알겠는가.. 그들의 느긋한 관계란 어찌 보면 부럽기도 또 어찌보면 대책없게도 보인다. 어찌보면, 이번 루프의 이 남녀전의 성사는 고영태의 멍청한 희생정신의 소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수란의 오버된 성해방이미지에 조악한 페인팅으로 범벅된 고영태의 왜소한. 보디.는 결국 무서운(난 무서운데)여성 성해방의 경제법칙(빼앗긴걸 빼앗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갈한 부부전의 석연찮은 비밀스러움은 그 알수 없는 역학에서 나오듯이. 이 두 젋은 작가사이에서 실제로 거래된 역학은 두 사람만이 알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무래도 부부전을 떠올리게 된다면 이 두 작가를 조우 시킨 동기의 단순함과 안일함의 속성과 또한 내가 닮아 있는 것을 아닐까…? 나는 이 두 작가를 선택하는 루프의 기획회의때 참여한 바 있다.

강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