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의 사이, 그 무한 변주의 가능성
‹디지털 트라이앵글: 한ㆍ중ㆍ일 미디어 아트의 오늘›전의 의미
한국과 중국,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의 핵심 국가들로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교류를 통해 하나의 권역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삼각주Triangle로서의 지정학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사적 변화를 주도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지역은 근대 이후 청일전쟁, 만주사변, 한국전쟁 등을 야기한 분쟁지역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정학적 위치에 기인한 상호 반목과 이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고 상호 호혜와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접촉을 시도해 나가고 있다.
그러한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의 교류이다. 주지하듯이, 광주 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상하이 비엔날레, 후쿠오카 트리엔날레 등 한ㆍ중ㆍ일 3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행사는 그러한 교류를 촉진시키고 있는 촉매들이다. 3국의 예술가들은 이처럼 다양한 예술행사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그런 가운데 예술을 통한 인류 평화의 증진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디지털 트라이앵글: 한ㆍ중ㆍ일 미디어아트의 오늘› 전은 2천년 이후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미디어 아트의 역사와 현황을 한ㆍ중ㆍ일 3국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중국의 정상급 전시기획자겸 미술평론가인 황두黄笃와 한국의 미디어아트 전문기획자인 서진석, 그리고 윤진섭이 공동기획자로 나서 호흡을 맞춘다.
한국에서는 2천년에 출범한 ‹미디어 씨티_서울Media City_Seoul›이 미디어 아트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린 신호탄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미디어 아트에 대한 관심을 갖고 꾸준히 작업을 펼친 선구적 작가들이 있었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미디어 아트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그 전통을 잇는 전시가 바로 대안공간 루프의 ‹무브 온 아시아Move on Asia›이다. 이 전시는 지난 10여 년간에 걸쳐 아시아 지역의 미디어 아트 작가들을 결속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아시아의 미디어 아트를 서구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서진석이 지휘하는 이 전시는 작년에 독일의 칼스루헤에 위치한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 미술관인 ZKM에 초대돼 국제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 전시는 미디어 아트의 전문기획자로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미디어 아트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급서急逝한 고故 이원일(1960-2011) 큐레이터의 영전에 바치는 헌정 전시이다. 평소에 ‘행복한 미술 전투기 조종사’를 자임하며 정열적인 활동을 펼쳤던 그는 어느 날 거짓말처럼 자신을 아끼던 동료들의 곁을 떠났다. 제6회 상하이비엔날레 공동감독(2006), 타이페이 현대미술관 주최 ‹디지털 써블라임 : 새로운 우주의 주관자들Digital Sublime : New Masters of Universe(2004)›전 초빙감독, ZKM 창설 10주년 기념 ‹아시아현대미술특별전 : 터모클라인-새로운 아시아의 물결Thermocline of Art : Asian Contemporary Art-New Asian Waves(2007)›전 큐레이터, 스페인 세비야 비엔날레 공동감독(2008) 등을 역임한 그의 경력이 말해주듯이, 이원일은 비행기 안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다고 할 정도로 전시 기획자로서 후반의 삶을 분주히 살았다. 결코 길지 않은 그의 생애 중 말년의 삶은 주로 국제적 활동에 치중되었다. 비록 그토록 갈망했던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의 아시아 미술전은 끝내 실현을 보지 못했지만 전시기획에 바친 그의 열정과 개척자적 정신은 후대에 길이 빛나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윤진섭
중국 현대 미술의 변화
2000년부터 중국 현대 미술계는 점진적으로 큰 변화가 있어 왔다. 전위 미술과 이데올로기의 대치에서 현대 미술과 상업의 결합으로 대체되고 ‘세 가지 미술계 동향의 공존’이라는 뚜렷한 특징이 나타났다. 첫째는 국가 미술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주류 미술이고 둘째는 옥션과 화랑으로 대표되는 미술 시장의 역량이다. 셋째는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미술가 집단이다. 그들은 상호 의존, 상호 침투, 상호 대치하며 대화, 교류, 협상하는 중국 미술의 특수한 양상을 만들어 냈다.
중국 현대 미술 시장은 2005년부터 폭발적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창 발전하고 있는 경제가 미술 작품 수집에 대한 투자의 확신을 이끌었다. 이는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의 좋고 나쁨을 반영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런던 파이낸셜 타임즈(2006년 12월 2일 제3면) 보도에서처럼 ‘중국, 인도의 예술가와 소장가가 현대 미술 시장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중국 경제가 계속 열기를 더해감에 따라 거의 모든 미술 관계자들이 미술 시장으로 몰려 갔고 미술 작가들은 경매된 작품 수를 놓고 자신들을 위치 지우려고 경쟁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미술계 흐름에서 상업 화랑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데 60년대 서구에서 여러 미술 분파가 급부상한 것은 분명히 화랑과 컬렉터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화랑이 오늘날 중국 현대 미술 발전에서 그 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홍콩 하나트 티지 갤러리Hanart TZ Gallery의 장송런张颂仁, Johnson Zhang Tsong-zung과 네덜란드 출신의 한스 반 다이크Hans Van Dijk가 각자 화랑 방식에 따라 중국 현대 미술을 국제적으로 진출시킨 것이 그 예이다.
오늘날 중국 화랑이 현대 미술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이탈리아 콘티뉴아 갤러리Galleria Continua, 베이징 아라리오 갤러리Arario Gallery Beijing, 롱마치 스페이스Long March Space, 상하트 갤러리ShanghArt Gallery, 베이징 코뮌Beijing Commune, 탕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Tang Contemporary Art Center, 울렌스 현대 미술 센터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 등이 대표적이다.
예술가의 창의성에 있어서 미술 시장은 양날의 검처럼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의 양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적극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줄 수도 있는 한편,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들은 시장에서의 성공을 미술작품의 성공으로 여기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복제한다.
누군가 중국 현대 미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현재적 상황을 묘사하고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간단한 말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 현대 미술이 발전한 ㄹ모습은 분명히 개혁 개방 30여 년 동안 장기적으로 축적된 결과이다. 특히, 2000년부터 계속된 경제 성장으로 중국이 세계와 하나가 되기 시작한 것이 그 이유이다. 이렇듯 ‘문화혁명’ 시대 이후, 전체주의적 집단의식이 약화되면서 사회가 급속히 변화하는 가운데 중국 현대 미술의 개념 및 언어는 다양해졌다.
중국 체제가 변화하면서 권위주의가 쇠퇴하고 개성이 두드러지며 중심이 약화되는가 하면 다원성이 강조되는 등 중국 현대 미술은 더 이상 ‘전체주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번 전시 ‹디지털 트라이앵글 : 한·중·일 미디어 아트의 오늘›의 취지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중국 현대 미술 작가 미야오샤오춘缪晓春, 왕궈펭王国锋, 추이시우웬崔岫闻, 첸웬링陈文令, 양치엔杨千의 작품은 사회와 정치의 전환, 예술 개념의 구현, 언어와 형식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목도한 것처럼 탈식민주의 이론이 쇠락하거나 종언을 고했을 때, 비서구권 예술가는 중심과 비주류, 인종과 신분, 차이와 다원성의 주제에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작품에서 정곡을 찌르는 특성 또한 상실했다.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신흥국인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급성장으로 차츰 세계 경제뿐 아니라, 국제 정치 관계와 문화 판도도 바뀌었다. 이런 배경 아래 중국 예술가는 자신의 사회와 역사, 문화, 일상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야오샤오춘, 왕궈펭, 추이시우웬, 첸웬링, 양치엔을 대표로 하는 중국 현대 미술은 정치 체제가 변화함으로써 주관적 정치관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서사에서 일상생활로, 사회성에서 자연 회귀 및 미술의 본질 자체로 전향하였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세계화와 중국의 정치, 경제 발전 하에서의 예술 언어 변화를 기반으로 중국 현대 미술의 계보와 언어 구조를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적 회귀와 민족 자각에 대한 일체감, 중국 미학 개념을 반영해 왔다. 또한, 작품에서 개인의 자질과 판단, 창의성을 충분히 드러내며 사회 문제와 일상생활의 철학적 이치를 색다른 시각으로 일깨워 왔다.
글: 황두
디지털 트라이앵글: 한·중·일 미디어 아트의 오늘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가 정점에 다다르면서 부의 불균형 현상은 가속화되고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은 극대화되고 있다. 어느 사회학자는 지속할 수 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돌이키지 못하고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나폴레옹 군대의 러시아 침공에 비유하였다. 이러한 경제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우리 사회는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고 이 불안정한 사회를 인위적으로 안정화시키고자 정치가들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활용하고 있다. 실례로 현재 선진 민주 국가라 일컫는 유럽에서조차 극우 정당들의 창궐과 성장, 이에 따른 계층 간, 국가 간의 충돌이 목격되고 있다.
21세기 신-냉전의 기류가 동아시아로도 파급되고 있다. 특히, 경제적 불균형이라는 세계적 조류와 함께 한국의 이념적 대립, 중국의 거대 G2로의 부상, 자연재해 등으로 활기를 잃은 일본의 후퇴 등 지역적 특수 상황이 부합되면서 아시아 국가 간의 민족주의적 충돌은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한중일 사이의 영토분쟁, 과거사 문제 등 동아시아의 불안한 정세 안에서 3국간의 긴장과 힘의 불균형의 골은 깊어져 가고 있다. 본 전시는 한중일 3국이 겪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소프트파워soft power의 상징인 ‘예술’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술은 유연권력, 즉 소프트파워라고 말한다. 즉, 눈에 보이는 물리적 군사력이 아니라 국가 간, 민족 간의 정서를 조용히 연계시키는 유대의 힘이다. 점차로 냉각되어가는 동아시아의 분위기에서 서로의 이해를 기반한 고차원적 문화담론을 형성시킴으로써 동아시아가 가야 할 길을 먼저 미술에서 찾고자 한다. 여기에는 화해와 화합의 제스처가 함축되어 있으며 새로운 아시아의 미학 담론을 생산해가며 독립적이고 주체적 분위기를 창출할 것이다.
덧붙여 본 전시는 고(故) 이원일 선생님의 추모를 담고 있다. 생전에 전세계를 넘나들며 균형화된 아시아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이상을 신-냉전이 도래하고 있는 작금의 사회에 투영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로 모인 아시아 큐레이터들과 참여 작가들은 서구미술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가치와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며 아시아권 국가 간의 수평적 교류에 새로운 지평을 연 전시 기획자 고故 이원일을 기린다.
글: 서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