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지나가지 않았고 우리는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다.
왕더웨이David D.W. Wang는 ‹괴물 그것은 역사다: 역사, 폭력, 내러티브The Monster That is History: History, Violence, Narrative›에서 역사를 사람을 먹어 삼키는 괴물로 비유하며, 역사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소용돌이는 사실 그 가운데가 비어있는 나선형 돌풍이다. 하지만 결국 이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국과 대만은 일제 식민지라는 근대사를 같은 시기에 겪었고 이후 국가의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유사하지만 다른 역사적 흐름을 거쳐왔다. 전시는 일제 식민지 역사를 지금의 시점에서 해석하는 한국과 대만 현대 예술가의 작업을 함께 소개한다. 총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첫 전시 ‹상처 입은 많은 이들이 모니터 밖으로 걸어 나와, 나를 외면한 채 지나쳐 간다.›에서는 ‘역사라는 거대 서사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건축에 담긴 정치의식’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여전히 대만 정부가 사용 중인 총독부 건물과 한국 정부가 철거한 총독부 건물만큼이나, 상반된 관점이 존재한다. 한 세기가 흘러간 지금 일제 식민지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정치적/경제적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정재연의 작업은 차오량빈Liang-Pin Tsao의 작업과 조응하며 대화한다. 특정한 정치적 선전을 위해 설계된 건축물을 바라보며 그것이 갖는 현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한다. 이는 상이한 반응을 취하는 타자로부터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의 존폐 문제에 대해 한국과 대만은 동일한 식민 정권의 프레임 속에서 정체성, 식민 해방, 이데올로기, 의제에 대한 상이한 반응과 대책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시각으로 건축물을 마주하고 해결했는가? 어떤 정치적 의도 때문에 건축물을 철거했는가? 어떤 요소를 위해서 건축물을 보존했는가? 철거된 건물은 무엇을 남겼나? 또한 보존된 건축물은 무엇을 남기지 못했나?
전소정과 첸페이하오Fei-Hao Chen의 작업은 시대와 인간성에서 또 다른 대응관계를 이룬다. “우리 인류의 모든 세대가 목격하고 저항하며, 손을 맞잡고 자기 시대의 괴물을 만들었다….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악惡 중에서, 우리는 그런 비인간적인 짐승 같은 행위가 실은 모두 인간의 탓인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본성은 선善을 지향하고자 투쟁하나, 곳곳에는 괴물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첸페이하오Fei-Hao Chen의 작업에서 언급된 이선득Charles W. Le Gendre*은 시대의 거센 파도를 목격하고 입증한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불안의 시대를 부추기는 것인가? 잔혹한 현실 앞에 예술로 저항하고자 했던 시인 이상의 전위적 정신은 현대의 우리에게 저항의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가? 시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에 직면해야 하는가?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다›라는 전시 제목은 낭만적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전시는 역사적 트라우마의 분명하거나 분명치 않은 상처들을 직면하고자 한다. 사건이 끊임없이 바뀌는 역사의 홍수 속에서 과거는 지나가지 않았고 미래는 오기 마련이다. 역사가 만든 상처를 과거 타인의 것으로 보지 않고 지금 자신의 역사로 이해할 때 상처의 본질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전시가 담는 서사적 의도는 우리 스스로의 철학을 세우는 것이다. 서구 이론의 중요성과 이점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삶과 사회적 경험을 기초로 한 우리만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우리만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철학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관객 스스로 본인의 이야기를 회상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제 내러티브로 구축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선득Charles W. Le Gendre: 미국의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미국에 귀화했다. 1860년부터 중국 샤먼 지역의 미국 대사관으로 활동했고, 이후 일본의 외교 고문을 거쳐 1890년 3월 조선의 내무 협판으로 취임했다. 한국에서 이선득(李善得)이라는 이름을 썼다.
글: 지아-전 차이
지아-전 차이Jia-Zhen Tsai(b.1979)
지아-전 차이Jia-Zhen Tsai는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성 독립 큐레이터이다. 타이베이 예술대학교에서 현대미술 비평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타이베이의 비영리 공간 스페이스 탐탐아트Space tamtamART를 공동 운영했다. 주요 기획전시로는 ‹모호한 존재Ambiguous Being, 베를린, 텔아비브, 타이베이, 2012›, ‹무언의 규칙/리듬Unspoken Regulate/Rhythm, MPA-베를린, 2012›, ‹라이브 탄약Live Ammo,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2011›, ‹경계, 거울같은Borderline, Mirrorlike, 관두 미술관, 화산 문화공원, 타이베이, 2008›, ‹이스라엘 젊은 작가 교류전, 타이베이, 2008-2009› 등이 있다.
작가노트
전소정, 텔레포트는폐쇄회로를살해하였는가, 2채널 비디오, 2018
‹텔레포트는폐쇄회로를살해하였는가›는 한국의 시인이자 건축가였던 이상의 초기 시로부터 도시 서울의 근대성에 대한 탐구를 읽어낸다. 1930년대 서울이라는 도시 현실과 건축가로서의 체험은 이상의 초기 시 전반에 드러난다. 식민지 지배하에서 자본주의적 공간으로 탈바꿈해가는 서울과 그곳을 활보하는 군중들, 그리고 근대 문명이 가져다 준 아찔한 현실에 대한 경험은 점과 선, 숫자나 기호, 기하학적 도형, 숫자 표, 한자, 수술실의 해부 장면, 순열 표, 물리학 공식 등의 비시적 기호들과 새롭게 구축된 코드 체계, 투시도적 시점 등의 문학적 장치들로 등장한다.
‹텔레포트는폐쇄회로를살해하였는가›는 이상의 초기 시로부터 도시의 변화 가운데 느꼈을 경이로움,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기호들로 환원시켜 해체, 조합하려는 태도, 그리고 미적 충격으로써 문학적 장치들에 주목한다.
자전적 독백으로 시작하는 본 작업은 종로의 거리를 배경으로 cctv 폐쇄회로에 포착된 나(작가)의 존재를 쫓는다. 1930년대 이상이 거닐던 종로 거리의 경이와 공포는 당시의 광고 문구들로 콜라주 되어 2018년의 속도감 위에 포개어진다. 나는 닫힌 괄호와 같은 폐쇄회로 속에 갇혀 화면 안에서 끊임없이 피드백되는 나의 존재에 아찔한 현기증을 경험한다. 이 현기증은 또한 시공의 순간이동(Teleportation)을 통해 또 다른 차원에서 발생하며 틈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을 마주하게 한다. 이상의 시어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를 제목으로 전용하고 있는 작업은 원과 직선의 세계로부터 텔레포트와 폐쇄회로의 세계로 전유된다. ‹텔레포트는폐쇄회로를살해하였는가›는 도시의 시간에 대한 연구이자 과거와 미래 사이의 불안과 경이에 관한 기록이다.
정재연, A Sketch for a Foundation, 싱글채널 비디오, 2019
‹A Sketch for a Foundation›는 작가가 어린 시절 방문했던 국립중앙박물관(옛 조선총독부-중앙청)에 대한 개인적 기억에서 시작한다. 건물의 화려한 실내 광경에 취해 거닐었던 경험, 철거된 건물을 보며 그 이유를 모른 채 아쉬워했던 기억, 그리고 성인이 되어 철거된 이유를 알게 되면서 느끼게 된 불편한 감정의 발원을 찾고자 한다.
건물은 부정적인 역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대대적으로 철거되었다. “일본 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는 어느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광복 50주년에 맞춰 건물은 철거되었고 뉴스에서는 수치스러운 일제 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회복하여 국민화합을 이루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당시 기술로 건물 폭파는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건물이 폭음과 함께 한 순간에 사라진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 그 상징적 표상은 말끔히 사라졌고,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작가에게 건물에 대한 기억과 경험은 건물의 부정적 과거와는 상관없이 아름답게 남아있다. 그것은 어쩌면 여전히 맴도는 이데올로기의 상징과 기호들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 혹은 역사의식의 부재가 탄로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한편 식민지 건축은 도시 곳곳에 남아 흥미로운 도시경관을 만들며 과거를 허구적, 낭만적, 향수적 이미지, 곧 소비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첸징위안, 스태글링 매터, 3채널 비디오, 2011
Stagger는 동사로, ‘비틀거리다, 휘청거리다’라는 의미이며, Staggering는 형용사로, ‘엄청나게 충격적인’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흔들거려 곧 무너질 것 같은 모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스태글링 매터(Staggering Matter)의 문자상 의미는 ‘거대하여 충격적인 사건(사물)’이지만, 동시에 매우 요동치고 지탱점이 없는 이 ‘오브제’의 이면을 은유하기도 한다. 스태글링 매터 속에서 예술가는 다른 형식과 분열적인 개성 및 묘사적 시각으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스트레스 아래에 짓눌려지고 묶여버린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한다. 물론 이 방식에 많은 허점이 존재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모든 현실과 허황된 ‘역사적 감각’이 드러내 보이는 두려움과 좌절은, 이 거대한 오브제에 대한 무력감에 호응한다.
첸페이하오, 로버호와 팔보공주: 머시 헌트, 이선득과 명성황후, 비디오 설치, 2019
대만 핑동(屏東) 컨딩(墾丁)에는 한 서양 여성을 대상으로 제사를 올리는 ‘팔보공주 묘(廟)’가 있다. 서양에서 온 이 신령의 처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국제 경쟁 시기’(대만의 네덜란드와 스페인 식민 시기)에 네덜란드 공주인 마가렛이 애인을 찾으러 대만으로 왔다는 이야기이다. 대만으로 오던 중에 그녀가 탄 배가 거센 풍랑에 맞아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었고, 당시의 구이자이쟈오(龜仔角) 촌락의 원주민에게 피습을 당했고, 원주민들은 그녀가 지니고 있던 나무 신발, 스카프, 목걸이, 반지, 가죽 상자, 귀걸이, 깃털 펜 그리고 종이 등 여덟 개의 물건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는 ‘팔보공주’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팔보공주에 대한 소문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민간 괴담 속의 마신(魔神) 이야기와 결합하여 이 전설에는 더 다채롭고 신비로운 색채들이 덧붙여졌다.
헝춘(恆春)지방 문화역사단체인 헝춘투워전(恆春拓真)학회의 연구를 따르면, 현지의 정확한 사적(史籍)에 실려 있는 외국 선박과 관련한 해난 사고와 생존자가 살해당한 일은, 청나라 시기인 1860년대 (청나라 동치 초기)에 발생한 몇 개의 선박 사고 중에서도 명확히 외국 국적 여성이 살해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1867년의 로버호(Rover) 사건이다. 이는 당시 해당 미국 상선이 광둥(廣東)에서 랴오닝(遼寧)으로 가는 과정에서 태풍을 만나면서 대만 남부 해역까지 표류하다 란위(蘭嶼) 근처에 침몰한 사건이다. 선장 일행이 끝내 랑쟈오(瑯嶠, 오늘의 헝춘恆春)에 상륙했지만 현지 파이완족(排灣族) 원주민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그 중에는 선장 부인인 머시 헌트(Mercy Hunt)도 포함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로버호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대만으로 온 주(駐) 중국 샤먼 미국 외교관 이선득(Charles W. Le Gendre)은 이를 계기로 핑동 일대에 있는 파이완족 원주민과 교류를 시작했고, 당시 청나라 통치 아래의 대만 정치 상황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의 모란사 사건(牡丹社事件)에서 그는 심지어 일본군의 고문으로서 일본이 대만을 공격하고 점령하는 것에 협조했으며, 이는 훗날 일본이 대만을 식민 통치하게 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890년 3월, 이선득은 일본을 떠나 조선왕조의 경복궁에 조선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취임하였다. 이 비극적인 군왕은 아버지인 대원군과 아내인 명성황후 사이의 궁정 투쟁에 끼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이후 명성황후는 경복궁 옥호루에서 일본인에 의해 시해되었는데, 이는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궁중 비극이자, 동시에 이선득이 한국에 도착한 후 마주한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선득의 한국 경험은 결코 길지 않았는데, 그는1899년 한국에서 중풍으로 별세하였으며, 이후에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히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왕조는 끝내 일제에 의한 강제 합병이라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첸페이하오는 비디오 녹화 방식으로 이 사건에 관한 각종 역사 파일을 재구성하였으며, 원주민 파이완족의 ‘추억의 노래’를 작품의 중심으로 삼아, 널리 알려지지 않은 대만, 한국, 일본, 미국에 걸쳐진 역사적 연결을 전하고자 했다.
차오량빈, Becoming/Taiwaness, 사진, 라이트박스, 2018
과거를 되돌아보면, 대만은 네덜란드인, 스페인인, 한인, 만주인, 일본인, 중국인 등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다른 정치적 실체들이 이 섬에서 흥망성쇠를 거치면서, 많고 적은 통치의 흔적들을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흔적의 배후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는 민주 개방을 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로젝트는 원래 일본 신사였던 대만의 충렬사, 그리고 이와 각계의 사용자들 간의 긴장 관계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의 죽은 자와 산 자, 신성함과 속세, 민족 역사와 민주 가치 간의 충돌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정의 전환에 대한 호소 아래, 우리는 충렬사가 오늘날의 대만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충렬사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오늘날에 ‘대만인으로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만 각지에 있는 충렬사에서 모시고 있는 인물들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역사적 맥락이 있는가? 대만인이 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 대만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또한 대만인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가치 의식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대만인으로서의 우리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