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독특한 사회, 관습적 체계이다. 체득한 규칙에 따라 무한한 문장을 생성시킬 수 있는 인간의 언어 능력은 인류가 다른 영장류와 구별될 수 있는 가장 우월하고 특별한 기능이다. 인류의 뛰어난 언어 능력은 수많은 언어를 만들어냈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생성, 발전, 소멸을 거듭해왔다. 대항해시대 이후 제국 열강들의 식민지배와 거듭된 전쟁으로 약소국의 언어는 점차 사라져 갔고, 아시아 역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급격한 사회적 변화로 인해 많은 언어들이 소멸되었다. 강자에 의해 정책적으로 지시된 언어교육은 문화적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우월성을 각인시키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비슷한 역사를 지닌 동아시아의 경우 각 사회마다 언어가 사라지는 과정이 유사하게 진행되는데, 때문에 국가와 인종은 다르지만 한 개인이 기억하고 있는 소멸의 과정은 서로 유의미하게 연결된다.
학창 시절, 우리는 단일어를 사용하는 단일민족으로 교육받는다. 국가가 지정한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며, 지역이나 계층을 법으로 한정시켜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은 ‘정규 교육을 받은 사회적 우위 계층’ 임을 자연스레 인식하게 한다. 단일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으로 교육받은 김우진의 작은 호기심은 대만에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체류했을 당시 현지 친구와 무심코 나누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급격한 역사의 변화를 맞이한 대만 역시 객가어를 비롯한 대만어, 원주민어 사용을 정책적으로 금지당했고, 학교에서는 만다린어를 교육받았다. 만다린어 외 다른 언어를 쓰는 학생은 “나는 방언을 사용했습니다.’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어야 했고, 반장은 방언을 쓰는 학생을 선생에게 고자질해 체벌을 받게 했다.
9개의 인터뷰로 구성된 〈완벽한 결막의 서막〉은 대만, 홍콩, 한국(제주)에 거주하는 모국어 사용자들의 언어에 대한 기억이다. 이들은 모두 학교에서 특정 언어를 사용하도록 교육받았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지정된 언어 사용을 종용당했다. 작가는 언어가 변화하는 과정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기억되는지 수집한다. 할머니의 제주 방언으로 제작된 〈한국어 받아쓰기_다음을 듣고 따라 쓰세요〉는 한국어는 단일어로 교육받은 우리의 체계를 혼란스럽게 한다. 언어의 단일화는 제주 방언을 사라지게 했고, 표준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은 제주 방언을 알아들을 수 없다. 〈완벽한 합창〉은 제주 해녀의 노동요 ‘이어도사나’의 일부를 무형문화재인 제주 해녀노래 전승자와 실제 해녀들이 노래한 영상작품이다. “이제 진짜 해녀는 없어. 그나마도 곧 없어질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해녀들의 관조 섞인 말처럼, 제주 방언으로 된 노동요 조차 표준어로 대체되었고, 현재 불리우는 해녀 노동요는 대부분 표준어를 바탕으로 제작, 배포되고 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되었고, 언어의 소멸은 고유의 문화 역시 사라지게 했다.
김우진은 한국어는 단일어로 교육받아온 우리의 굳건한 믿음에 균열을 꾀하듯,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가장 익숙하고 기초적인 사회적 규범, 장치 등에 질문을 던진다. 전작인 〈Brave New Exercise〉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 대만의 국가 주도 집단체조를 소재로 제작되었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을 더듬어 기계적으로 체조 동작을 수행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일본의 도수 체조, 라디오 체조 등에서 비롯된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비슷한 형태의 집단체조는 영상에 등장하는 60여 명이 마치 한 사람이 동작하는 것처럼 일률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다음을 듣고 따라 하시오》는 어린 시절부터 모두가 듣고 봐 왔던 익숙한 지시어다. 우리는 늘 익숙한 듯 구령에 맞춰 집단체조를 해왔고, 사회적 언어를 습득해왔다. 정해진 프레임을 벗어난 소수는 관습에 따라 잘못되거나 틀린 사람으로 규정된다. 전시는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마비된 시선을 인식하고 그 과정을 추적하는 개인의 작은 질문에서 시작했다. 사회 속에 숨어있는 프레임과 그것을 작동시키는 일상의 장치는 개인을 은밀하게 집단화시킨다. 김우진은 우리를 규정짓는 특정한 프레임에 질문을 던진다. 맞고 틀린 것, 좋고 나쁜 것으로 교육받아온 수많은 사회적 규칙들은 실은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다음을 듣고 따라 하시오》가 지나치게 역사적 쟁점이나 사회적 이슈로만 읽히기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인지하지 못했던 일상의 사소한 장치에서 시작된 작은 질문들은 단지 규격화되어가는 각 개인에게 소소한 해방을 권유한다.
글: 이선미
김우진(b, 1976)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골드스미스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Open Site, Brave New Exercise: Memorized Movement, 도쿄 아트앤스페이스, 2017›, ‹Hidden Frame,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2016›, ‹Build Up, 미디어극장 아이공, 서울, 2015› 등이 있으며, ‹Kotodama, 파라사이트, 홍콩, 2018›, ‹고독의 기술, 금호미술관, 서울, 2018›, ‹Up Beat, 서울 무용센터, 2016›, ‹오픈스튜디오 10, MMCA고양레지던시, 2015›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금호창작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김우진의 작업은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에 속한 한 개인인 ‘내’가 다른 개인들과 만나며 그들이 가지는 특정 시선, 시각, 혹은 다른 어떤 경계와 마주했을 때 발생하는 충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