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은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며, 일반적으로 인간 진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작가노트에서 발췌
마르코 바로티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생태계에 기술발전이 미치는 이점과 딜레마를 사운드와 데이터를 사용해 작업 안에 담는다. 일상의 환경, 지구를 구성하는 생태계와 사운드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작가는 사운드 아트와 시각 예술을 병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제작한다. 로봇 공학과 음파를 사용한 키네틱 사운드 설치 조각으로 제작되며, 청각, 시각, 촉각 등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여 우리가 어떠한 위험에 처해있는지 듣고, 보고, 느끼게 한다.
사운드, 인간, 생태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음악가가 되도록 훈련받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에나 재즈 아카데미Accademia Nazionale del Jazz - Siena Jazz에서 공부한 바로티는 음파를 디자인하고 입체화하는 방식에 대해, 더 넓게는 환경적인 맥락에서 사운드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했다.
바로티의 작업에서 시각적으로 설계된 미니멀리즘 조각은 어디에나 있는 친숙한 형태를 갖는다. <이끼Moss, 2021>, <조개Clams, 2019>, <딱따구리Woodpeckers, 2018>, <백조Swans, 2016> 등의 작업에서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의 형상을 한 ‘테크 생태계’를 만들었다. 작가는 과학 기술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이 지구의 환경 위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한다. 더 빠른 속도, 더 큰 데이터 크기는 무분별한 데이터 사용과 공유, 이로 인한 더 많은 소비, 지출을 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아닌가? 새로운 가능성이 지구의 생태를 악화시키지 않는가?
<유인원APES>은 바로티가 예술-과학-레지던시 에 참여하던 기간 호르스트 궤르츠 IT 보안 연구소HGI, 막스 프랭크 연구소MPI의 과학자 및 연구원들과의 공동 연구로 제작되었다. 연구진은 페이스북의 좋아요, 구글 검색, 틴더 스와이프, 이메일 등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사이버 이벤트를 실시간 데이터로 혼합시키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침팬지, 오랑우탄 등의 형상을 한 설치작업 <유인원APES>은 재활용된 와이파이 섹터 안테나로 제작되고, 수합된 데이터는 초당 속도로 해석되어 0~4 헤르츠 사이에서 변동하는 초저주파음으로 변환된다. 생성된 저주파는 <유인원>의 팔에 설치된 DC모니터를 통해 재생되고, 이 기술은 실제 유인원의 움직임과 유사한 밀기, 당기기 등의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물리적인 힘으로도 사용된다.
<유인원APES>은 사이버 보안, 데이터 소비, 감시 자본주의, 허위 정보 등 디지털 진화에 따른 딜레마에 대한 연구로, 인간 진화의 상징인 유인원에서 그 모습을 차용한다. 모니터에는 데이터화 된 개인의 정보가 숫자로 보여지고, 카운터가 특정 숫자에 도달하면 음파를 생성한다. 생성된 저음의 주파수는 <유인원>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고음의 주파수는 사운드스케이프로 방출된다. 이 소리는 실제 유인원의 울음소리를 딥페이크 하도록 훈련된 AI가 만들어낸 음파로 구성되었다. 음향 조각들은 데이터 속도에 의해 실시간으로 변조되고 기기에 내장된 4개의 확성기를 통해 재생된다. <유인원>의 본체는 공명실이 되어 쿼드러포닉(4채널 녹음 재생 시스템)으로 확산되며, 이 소리는 AI가 학습(진화)될수록 실제 유인원의 외침과 유사한 결과로 나타난다.
<유인원APES>은 기술 발전이 문명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질문한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최첨단 기술 시대에 무분별한 데이터 사용으로 인한 사생활, 보안 등의 우려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함께 생각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이선미,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마르코 바로티(b.1979- )
마르코 바로티는 베를린에 기반을 둔 미디어 아티스트로 데이터 기반의 키네틱 사운드 조각을 제작한다. 시에나 재즈 아카데미Siena Jazz Academy 에서 음악 공부를 한 후 사운드와 시각 예술을 병합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작업은 지구에 미치는 인위적인 영향에 대한 은유적 역할을 하며 사람들이 환경과 사회 문제를 우리에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로티의 작업은 ‘Ars Electronica(린츠, 오스트리아)’, ‘Futurium(베를린, 독일)’, ‘폴리텍 페스티발(모스크바, 러시아)’, ‘Fact(리버풀, 영국)’, ‘Wro Art Center(브로츠와프, 폴란드)’, ‘피크닉(서울)’, ‘Isea(몬트리올, 캐나다)’, ‘Dutch Design Week(에인트호번, 네덜란드)’, ‘NTU(싱가포르)’, ‘Würth Museum(라 리오하, 스페인)’, ‘Emaf(오스나브뤼크, 독일)’, ‘Lisboa Soa Soa(리스본, 포르투갈)’, ‘La Boral(히혼, 스페인)’, ‘Nuit Blanche(브뤼셀, 벨기에)’, ‘Platoon(멕시코 시티)’, ‘List í Ljósi(아이슬란드)’ 및 ‘New Holland(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에서 국제적으로 전시되었다. 2019년 NTU 글로벌 디지털 아트상, 2018년 테슬라 상과 2015년 Dulux Colour Award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