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커튼 너머에 싸구려 인조인간들이 있다. 외팔, 외눈의 장돌뱅이 같은 이 기괴한 기계들이 우글대는 ‘클럽 골든 플라워’는 ‘Draw True Drawn’(2007), ‘여섯개의 마네킹’(2011), ‘행복 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2011), ‘This is Me’(2013)등의 전작에서 보여준 상상력과 변화무쌍한 페르소나, 그것이 이입된 대상들의 기묘한 연극적 재구성의 확장판으로 ‘나는 누구일까?’ 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자기성찰적 회고록이다.
반복된 동작으로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차가운 눈빛의 이 이방인들이 내미는 손엔 쉽게 풀어지지 않는 불쾌한 긴장이 흐른다. 노동하고 마시고 춤추는 우리의 오래된 일상은 서로를 비추는 외팔이 로봇들을 통해 생경하게 다가오고 구걸과 구원, 구속과 연대의 구호가 난무하는 서울역 앞 광장같은 현실의 음울함을 더한다. 그들의 몸은 사다리와 합체하여 상승된 확장을 하고 그들의 행위에 따른 장소특정적 사운드를 제공한다. 로봇을 이용한 퍼포먼스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클럽 골든 플라워’에서 권병준은 이전의 사운드 작업들을 로봇들의 행위와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부연하며 빛과 소리, 움직임과 이야기가 결합된 총체적 인스톨레이션으로 승화시킨다.
클럽 골든 플라워Club Golden Flower
반복된 동작으로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차가운 눈빛의 이 이방인들이 내미는 손엔 쉽게 풀어지지 않는 불쾌한 긴장이 흐른다. 노동하고 마시고 춤추는 우리의 오래된 일상은 서로를 비추는 외팔 로봇들을 통해 생경하게 다가오고 구걸과 구원, 구속과 연대의 구호가 난무하는 서울역 앞 광장 같은 현실의 음울함을 더한다. 그들의 몸은 사다리와 합체하여 상승된 확장을 하고 서로를 비추는 조명과 함께 일종의 그림자 연극을 만들어 낸다.
_ 작가 노트에서
보따리 고물상, 취객, 시위, 구걸, 설교, 면벽수련과 같은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는 12개의 로봇들이 군무를 한다. 권병준 작가는 이 퍼포먼스 전시를 ‹클럽 골든 플라워›라 이름 붙였다. 작가는 90년대 중반 홍대 클럽에서 전시의 모티브를 가져왔다. ‹클럽 골든 플라워›는 작가가 1999년 발표한 노래 ‹악어새›의 가사에서 출발한다. “싸구려 인조인간에 노랫말/ 황금빛 꽃을 찾아 우린 악어새.”
당시 홍대 클럽은 주류 대중음악에 속하지 않은 인디 뮤지션들의 주요한 활동 공간이자 아지트였다. 그는 ‘삐삐롱스타킹’ ‘원더버드’ 등 밴드에서 활동했다. 홍대 지역의 본격적 자본의 유입과 함께 라이브 클럽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작가는 홍대의 전시공간에 클럽을 재현한다. 그 대신 그의 로봇들이 연주하고 춤춘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써 진행해 온 사운드 작업들에 빛과 움직임과 이야기가 담겨 표현된다.
한국 정부는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핵심 주제로 다뤄진 ‘4차 산업혁명’을 나아갈 미래로 선전하고 있다. 예술은 인간이 가진 창조력을 대표하여, 4차 산업으로 혁신을 앞당기는 도구로 여겨진다. 기업들은 예술이 ‘창의력을 통한 혁신’으로 기업의 미래 가치에 기여할 것이라 말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런 선전들에 대한 인문학적 예술적 비평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특히 후기 자본주의에서 과학 기술 발전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명백하게 ‘자본의 이윤 추구’에 정속되어 왔다는 사실은 감쪽같이 지워져 있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예술은 그 혁신에 기여한다’는 선전은 정치인이나 기업가뿐 아니라, 예술가들에게서조차 마치 ‘보편적 문명 변화’처럼 수용된다.
권병준은 그런 전도된 현실에 ‘춤추는 로봇’이라는 역설적이며 풍자적인 비평을 던진다. 그의 로봇들은 로봇 본연의 ‘높은 생산력’의 구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로봇들은 온종일 구걸의 손을 내밀며(혹은 악수를 청하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설교하고 시위하고 정찰하는 등의 ‘효용성 없는’ 행동들에 전념한다. 그리고 돌연 함께 춤춘다.
권병준은 믿기지 않을 만큼 적은 예산과 가내수공업적 제작 방식으로 12개의 정교한 로봇을 제작했다. 로봇들은 모두 외팔이다. 6개의 작은/어린 로봇들은 왼팔이고 큰/어른 로봇들은 오른팔이다. 총 160개의 모터로 움직이는 로봇들은 프로그래밍된 한 대의 컴퓨터와 동조한다. 로봇들은 각자의 빛으로 서로를 비춘다. 로봇들은 우리의 삶과 우리의 세계를 비추는 그림자 연극이다. 작가가 연주하고 춤추던 클럽이 그랬듯, ‹클럽 골든 플라워›의 초대장이 지금 막 우리에게 도착했다.
글: 양지윤
권병준 (b, 1971)
권병준은 1990년대 초반 싱어송라이터로 음악 경력을 시작하며 얼터너티브 록에서부터 미니멀 하우스를 포괄하는 6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 2000년대부터 영화 사운드 트랙, 패션쇼, 무용, 연극, 국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음악작업을 해왔다. 2005년부터는 네델란드에서 거주하며, 소리학(Sonology)과 예술&과학(Art&Science)을 공부한 후 전자악기 연구개발 기관인 스타임 STEIM에서 공연과 사운드 등에 관한 실험적 장치를 연구, 개발하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2011년 귀국한 이후, 새로운 악기, 무대장치를 개발, 활용하여 음악, 연극, 미술을 아우르는 뉴미디어 퍼포먼스를 기획 연출하였고 소리와 관련한 하드웨어 연구자이자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근래 엠비소닉(Ambisonic)기술을 활용한 입체음향이 적용된 소리기록과 전시공간 안에서의 재현 관련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아시아문화전당 인터랙션 사운드랩 펠로우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그룹전과 공연은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아르코미술관, 서울, 2017), 〈불협화음의 하모니〉(대만 관두 미술관, 타이페이, 2016), 〈순간의 밤 2016〉(랑슈극장, 마르세이유, 2016) 등이 있다.
크레딧
공간디자인, 조명 : 최장원
사진 : 강봉형
제작, 설치: 김건호, 문두성, 김경봉
녹음: 이운식
후원 : 김용호, 임종현, 우준승, 유승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