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人 전: Sang Baek Ha Solo Exhibition
Sang Baek Ha
1999/10/16 – 1999/10/28

&7人 전: 하상백 개인전

작가: 하상백
장소: 대안공간 루프
주최/주관: 대안공간 루프

Trand Show: Sang Baek Ha Solo Exhibition

Artist: Sang Baek Ha
Venue: Alternative Space LOOP
Organized by: Alternative Space LOOP

물_사진
작가는 파란색 계열의 제시는 물을 통하고 있다. 투명함이 가지는 무한정 색감 수용력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때 왜 “물”은 차가움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색의 이미지가 적합한지 신기하다. 이 장면의 그 강렬한 푸른빛의 색감은 “물”이라는 이미지를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그것은 “물”이 지니는 이미지를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그것은 “물”이 지니는 자기만의 색깔을 우리는 인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를 돌아보고, 나만의 색을 찾아보고 그 색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러면 나도 그의 색을 찾아보고 인정하고 존중해 줄 텐데… 사진 속 그 강한 푸르름을 경험하는 두 사람, 남과 여는 허우적거림에서 나와야 한다. “물”은 그 고유함을 간직하도록 놔두고, 그들만의 색을 찾아서 나와야 한다. 미래 지향적인 느낌을 가진다. 그들은 탈출할 것이 분명하고 그들의 색을 찾을 것임이 분명하니까… _김인선

불_사진
태초에 인간들이 신체의 아무 부분도 사나운 자연과 대응하도록 만들어지지가 못하여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프로메테우스의 영감을 얻어 불을 생성하였다. 그 불은 인간에게 모피의 역할도 하고 발톱의 역할도 하고 송곳니의 역할도 하여 추위를 나게 하고 맹수의 위협을 극복하게 하고 질긴 고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불은 따뜻하면서도 뜨겁고 밝아서 주위에 몰리게 하면서도 어느 거리 이상의 접근을 거부한다. 그래서 불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이야기는 신화 속에 산재되어 있나보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자 인간은 신을 향수하기 시작한다. 특이한 방식으로 그것을 경배해 본다. 작가의 불의 이미지는 퓨전 스타일이다. 신이 제공한 불의 능력을 발판으로 이만큼 커져버린 인간들이 이젠 그들이 만들어낸 기계를 조작하여 그들이 만든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신에게 선사한다. 불을 제공한 댓가로 또한 스칼렛 색조의 아름다움을 통해 찬미한다. _ 김인선

바람_일러스트레이션
내년도 ‘뷰티 트렌드’를 내다본다. 일러스트로 그려진 여러 인체형상들 위로는 시레로 사용하게 될 화장재료가 입혀져 있다. 바람이 분다.

죽음 _사진
죽음에 대한 태도는 여러 양태로 드러난다. 죽음을 혐오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죽음을 자초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동기 역시 가지각색이다.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고민과 번뇌를 견딜 수 없어, 장가를 못 가서, 연예인 좋아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등등. 허무에 대한 불안을 가장 부각시키는 방편 중 하나인 죽음을 우리는 일상에서 남의 일처럼 가벼히 여기곤 한다. 살아있는 우리에게 죽음은 미래의 사건을 지시하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할지 모른다. 전시된 사진에서 보이는 인물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등장하는 오드리 헵번처럼 꾸민 어느 여인네(어찌 보면 어느 귀족의 사나운 영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은 얼마 전 결성(?) 된 대중가수 그룹 BROS의 한 멤버)이다. 그녀의 손에는 죽음을 재촉하려는 알약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삶의 여러 갈피들에게 배신당한 여배우의 과거 운성했던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기도 하고, 또 어쩌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주눅들림과 소심함의 다른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그녀의 죽음의 예고는 또 다른 희망을 위한 상징적 메시지라 표현하였다. 오호… 또 다른 희망이라… 사실 나 자신은 죽음에 대해 그다지 관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한다. 막상 닥치면 의연해지려나? 그 옛날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참된 자는 큰 기쁨 속에 저승으로 떠나리라” 하였고, 붓다는 “두려움 없이 깨끗한 곳으로 간다”며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사진 속 그녀의 죽음은 어떠할까 궁금해진다. 여러 흑백사진 가운데 있는 단 한 장의 칼라사진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2000년에 유행하는 여자 연애인의 전형은 엄정화나 이미숙, 그리고 배두나도 아닌 전시된 사진 속 인물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피_사진
하얀 웨딩드레스를 다라 한 줄기의 핏방울이 또로록 굴러 떨어질 때의 그 얼어붙는 듯 한 차가운 긴장감은 이 시대의 긴장을 해소시킬 수 있기 충분한 통과의례 같은 형식으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열정을 강조하는 붉은 피는 이제 그 상식을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유없이 행해지는 폭력, 그로인해 드러나는 피의 번짐이 이제는 우리 일상속에서 미화되고 있는 것이다. 속임수 같이 가미된 오렌지나 옐로우의 색들이 유틸리티의 요소가 되고 스포티즘의 요소가 된다. 피는 더 이상 낯선 섬뜩함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 흔하게 만나게 되는 붉은색일 뿐이다. 문득 피는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요소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1미리도 안 되는 바늘 끝으로 일초도 안 되게 살을 찔렀다 빼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기 위해 따르는 고통이 무서울 뿐이겠지. 그래서 작가가 제시하는 피의 이미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즐겨 보는 것도 괜찮을 경험일 것이다. _김인선

웃음_비디오와 설치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후 웃음이라는 작은 문제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거리였다. 베르그송은 웃음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공동적인 삶의 어떤 필요에 의해 대답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하기도 하였다. 전시 참여 작가들의 일상적인 작업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화면을 보면서 관객들이 자아내는 소소한 웃음은 그래서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의 일치, 말하자면 일공의 공범의식으로 볼 수 도 있겠다. 한편 우리의 일상은 속 시원히 하하하 도는 껄껄껄 웃을 때 막혔던 그 무엇이 뚫리는 느낌을 갖고 있다. 굳이 프로이트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들의 마음을 억압하는 에너지가 해방되어 터질 때 비로소 웃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웃음’의 모니터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무덤은 가장하는 사회, 사회적 꾸밈이라는 것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과감히 묻어 버린다. 이렇게 웃음은 인간이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웃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연상하게 하는 모종의 삼투작용을 행한다.

눈물_사진
은은히 드러나는 남보라색 이미지는 친절한 드라마보다는 시 같다. 작가는 말한다. 뒤로 넘어져 코가 깨졌을 때,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을 때 느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서글픔의 눈물을, 아름다운 장미 향기에 둘러쌓인 채 행복한 모습으로 관 속에 누워있는 한 여인의 행복한 눈물을 표현하려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