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Town: Richard Giblett Solo Exhibition
Richard Giblett
2002/04/13 – 2002/05/03

유령 타운: 리처드 게블렛 개인전

참여 작가:리처드 게블렛
장소: 대안공간 루프
주최/주관: 대안공간 루프

Ghost Town: Richard Giblett Solo Exhibition

Artist: Richard Giblett
Venue: Alternative Space LOOP
Organized by: Alternative Space LOOP

Ghost Town

모더니티의 신화를 구현해가던 19세기의 웅장한 대도시….그러나 그 이면에서 역설적으로 고대성과 쇠락의 기운을 읽어내었던 벤야민의 성찰은 오늘날의 현대도시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 도시 전역으로 미로처럼 뻗어나간 도로, 가장 현대적인 외양을 갖춘 도시의 풍경은 인간의 꿈의 실현에 다름 아니며 때론 인간의 유토피아적인 공상마저도 넘어서는 듯 보인다.

이 도시에서 모든 것은 항상 새롭다. 그러나 항상 새롭기 위해 급격한 유행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도시 한편에는 끊임없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어 폐기되는 것들이 있다. 가장 견고하고 새로워 보이는 도시 이면에 이처럼 낡고 쇠락한 폐허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는 새로움과 낡음, 영속성과 일시성이 바로 이 도시를 규정짓는 동일한 양면이라는 섬뜩한 깨달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렇다면 대도시에 적합하게 바뀌어 가는 삶의 방식은 또 어떠한가. 대도시에서 삶의 리듬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지만, 단조롭기 짝이 없다. 이러한 삶 속에서 가능한 인간의 경험은 순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것 뿐이다. 따라서 대도시의 건설과 더불어 인간이 익명의 대중이 되기 시작하였다는 말에 우리는 수긍한다. 익명의 대중을 만들어내고 소외시키는 도시는 더 이상 거주자들의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다. 이 대도시는 소외된 거주자들마저 떠나버리고 나면 결국 폐허가 되어버릴 운명인 것이다.

작가는 서부영화속의 낡고 인적 없는 마을을 지칭하는 용어인 Ghost town을 전시의 제목으로 삼아 이러한 도시환경의 변화와 그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즉 Ghost town이란 공동화되어버린 도시의 폐허를 직접적으로 지칭하며, 나아가 시, 공간적 제약 없이 확장 되어가는 도시에 대한 환상이 자리잡는 배경이다. 작가가 윤곽선만 남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단순화한 도시의 풍경은 이미 사라져 버린 건축물들의 잔영인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공간의 일시적 성격을 적절히 드러내는 형상이다. 때로 그것은 가장 활기찬 대도시에서조차 폐허가 되고 말 운명을 읽어내게 하는 어떤 암시가 된다.

작가에 따르면 이러한 도시환경에서 가장 적절한 삶의 방식은 ‘낮선 문화속의 이종적이고 동떨어진 건축 환경내에서 특정 위치 없이 존재하기’ 이다. 언제 어디서나 도쿄라는 도시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은 지금, 이곳이라는 시, 공간적 위치가 그다지 의미를 지니지 않는 도시공간의 성격을 적절히 드러내는 이미지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표현해 내는 도시의 풍경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의 형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시는 배우가 없는 연극 무대처럼 오직 텅 빈 공간으로서만 나타난다. 이는 작가의 시점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작가는 드넓은 도시 한복판을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면서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지각할 뿐이다.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 속에서 대중은 항상 한 무리의 군중으로서만 다가오며 개별 존재로 지각되지 않는다. 때때로 감지되는 것은 신체가 은폐된 관찰자의 시선 뿐이다.

작가는 핀으로 윤곽을 고정하고 마그네틱 테입으로 드로잉한 감시 카메라의 형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3차원적 공간을 점하고 있는 오브제인 비디오 테잎과 연결시킴으로써 2차원의 평면을 지각하던 시각적 경험이 급작스레 촉각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이는 도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지각방식을 제안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일련의 연필 드로잉들이 단순히 실사를 그대로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현실의 이미지가 가상 현실의 이미지와 나란히 보여지거나 기하학적인 이미지와 중첩되어 있다. 이는 파편화된 이미지로만 지각되는 도시 풍경에 대한 인상학적 묘사이다. 철저한 관찰자의 시선을 견지하는 작가가 관심을 갖는 것은 대도시가 스스로를 하나의 풍경으로서 제시하는 방식이며, 나아가 그의 의도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 속에서 대중이 느끼는 도시의 외관을 가장 적절히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도시를 Ghost town이라 명명하는 작가의 성찰은 매우 예리하지 않은가.

황진영,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