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예은은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이질적 문화에서 오는 모순, 불편함, 분산, 간섭 등의 개념을 설치 작업으로 풀이한다.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유학생활을 경험한 작가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오는 현대인들의 불편함과 부조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어디에도 진정으로 소속되지 못하는 현대인은 극적인 소외를 경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지를 다해 소속되기를 거부한다. 경계인으로서의 현대인은 공동체적 정주와 개인, 소속과 소외 사이에서 갈등하고 배회한다.
작가는 개인의 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문화적 이질감과 그로 인한 ‘혼성성’에 주목한다. 언어와 문화적 작용에 의한 사고의 혼성은 작가의 주된 주제인 ‘생각의 혼혈’이라는 큰 틀에서 재해석된다. 공간, 시간, 언어, 관계, 재료, 물질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개체가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면서 위계질서가 아닌 수평한 구조를 형성한다.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한, 모호한, 우연한 관계와 변화들은 혼성화를 통해 사회적 언어와 적절한 문화적 공유 구역을 생성하여 기존의 사회적 프레임을 흐릿하게 만든다.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구역은 사회가 정의 내린 국가, 인종, 민족, 규칙, 의무에서 벗어나 안과 밖이 바뀐듯한 모호한 형태로 제시된다.
개인전 《예측할 수 없는 투명함Unpredictable invisibility》은 문화적 개체들이 서로 뒤섞이는 혼혈 현상의 진행 과정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혼혈의 형태는 오브제들의 뒤섞임을 통해 과정으로 보여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과 시간에 주목하여 달, 집의 안과 밖, 유골함 등과 같은 특정한 오브제가 갖는 의미와 형태를 놀이한다. 물질적으로 보여지는 각각의 개체는 분할되고 재생산되어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관계로 나타난다.
작가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시계, 조명, 가구 등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개인의 물건들을 수집한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집된 물건들은 익명으로 나열되어 가상의 공간을 만든다. 작품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에서 작가는 집이라는 거주 공간의 개념을 확장하여 4차원의 관계로 변형시킨다. 이를 다시 해체하여 벽과 바닥이 없이 천장으로 이뤄진 공간의 조각들을 전시장의 천장에 배치한다. 이 조각들에는 집의 천장임을 암시하는 벽지, 조명 등이 매달려 있고, 그 안은 수집된 물건들로 채워진다. 마치 암호처럼 읽히는 작품의 제목은 물건의 주인들이 커뮤니티에서 사용했던 인터넷 아이디의 조합이다. 개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경험으로 재생산된 공유 구역은 관람객에 의해 조명이 켜고 꺼지며 모두가 뒤섞이는 혼성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삭›은 지구와 달, 해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설치 작업이다.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들어가 일직선을 이루는 때를 뜻하는 ‘삭’은 물리적인 크기가 아닌 관계에 의해 나타나는 시각 현상이다. 작가는 태양과 달이 겹쳐지면서 일시적으로 관측되는 달의 형태를 압축된 비닐로 재현한다. 폭발할 듯 압축되어있는 4개의 ‹삭›은 시간, 거리, 공간의 셈이 아닌 은유적 계산에 빗대어 관계의 상호 작용을 이야기한다.
유골함에서 보여지는 죽음과 장례의 과정, 삶의 이야기들을 역설적으로 기록한 ‹트랜스-마이그레이션Trans-migration›, 가구를 갈아내서 생긴 가루가 흩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단일슬릿› 등 민예은은 다양한 소재로 제도화되지 않은 가상의 공간을 설계한다. 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를 활용한 작가의 특별한 공간은 수학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방식으로 재조립되어 작가만의 개성 있는 공간으로 연출된다. 규제도, 의무도 없이 뒤섞인 혼성의 공간은 흐릿하고 모호하지만 예술 언어로 재탄생된 적절한 문화적 공유 지점으로 화합된다.
글: 이선미
민예은(b. 1986)
민예은은 프랑스 클레르몽 메트로폴 미술대학교에서 학사, 석사과정을 마쳤다. ‹비치볼 하우스, 갤러리 644, 서울, 2018›, ‹Sens Dessus Dessous,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파리, 2015› 등 3회의 개인전과 ‹이동하는 예술가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18›, ‹De la nature des liens, Cabane Georgina, 마르세유, 2017›, ‹있다, 있다, 있다, 천안 예술의 전당, 2017›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트라이앵글 예술협회 레지던시, 뉴욕, 2019›,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18›, ‹시테 국제 레지던시, 2015› 등의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민예은의 작업은 이질적 문화에서 오는 모순, 불편함, 무질서, 분산, 부조화, 간섭 등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오브제 자체를 말하는 씨니피에와 오브제를 구성하는 이미지를 말하는 씨니피앙을 전환시켜 오브제들이 단어를 구성하는 이미지로서 작용하는 순간을 제 미감으로 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