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done, Goodluck: Won Woo Lee Solo Exhibition
Won Woo Lee
2012/12/28 – 2013/01/28

웰 던, 굿 럭: 이원우 개인전

오프닝: 2012년 12월 28일 오후6시
작가: 이원우
주관: 대안공간 루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Welldone, Goodluck: Won Woo Lee Solo Exhibition

Opening: Dec 28th 6:00pm, 2012
Artist: Won Woo Lee
Organized by: Alternative Space LOOP
Supported by: Art Council Korea

WELLDONE, GOOD LUCK

작가 이원우의 작업은 개인적 사유의 외적 묘사를 통한 범(凡) 일상의 재조명이라는 큰 명제에서 시작한다. 그 사유는 스스로의 삶에서 직면하는 사건들로부터 추출해낸 ‘유머(Humor)’라는 에센스로서 밖으로 흐르는데, 이것은 물리적인 공간은 물론, 작품과 수용자 간의 공간을 환기시키는 역할에 집중한다. 이렇듯, 빈 공간을 유머러스함으로 채우려는 작가의 의도는 치밀하게 완결된 내러티브 덩어리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재기 발랄한 조크를 던짐으로써 또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포괄하는 것이다.

이원우의 작업은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를 빠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만져낸 소재들은 꽤 육중하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것에 집중하는데, 이는 유머의 발생이 우리가 가진 논리가 모순을 통해 일그러지거나 실패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러닉 유머러스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인 Tone-deaf는 거대화된 풍경(風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앞서 말한 빈 공간을 채우려는 시도를 이 작품으로 실행한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풍경의 울림은 악한 기운을 쫓고 행운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전해진다. 작가는 이 오버 사이징 된 풍경을 울려 공간에 커다란 행운을 가져오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내에 자리한 이 거대 풍경을 울리기 위해 한겨울의 갤러리는 문을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이때 공간과 관객은 그 순간의 아이러니를 감당해내며 행운을 가져갈 충분한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행운을 불러오기 위한 주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직(轉職) 한 갤러리의 문짝처럼, 공간과 공간 안의 모든 것들이 한데 뒤엉키게 하려는 시도에 있다. 다시 말해, 작품과 공간, 그리고 관객 사이의 빈 공간을 비시각적 요소들로 가득 채워내어 비로소 하나의 작업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1845년 3월 5일, 채닝(William Ellery Channing)의 편지를 받은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월든(Walden) 호숫가의 숲속으로 들어가 자기가 살 오두막을 스스로 짓기 시작한다. 그는 인간이 ‘끝없는 노력’이라는 채찍질로 인해 스스로 노예화되어가는 모습을 거부하고, 절제된 삶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작은 피난처에 은둔하며 자급자족하는 여가를 즐기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소로가 생각한 자유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자발적 고립’이라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즉 스스로를 억제하고 조절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 초월 가능성을 취함으로써 자유를 얻으려 한 것이다. 소로의 이러한 깊은 고뇌는 작가 이원우의 작품세계와 닮았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자기 안에 함유할 수 있는 자유의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인데, 그러한 생각은 ‘문(Gate)’이라는 사물로 전이된다. 문은 그것을 닫음으로써 공간과 공간을 철저히 구분 짓는 역할을 하지만, 열어 둠으로써 두 공간을 서로 환기시키는 역할도 한다. 작가에게 있어 이러한 ‘문’은 자유의지의 발현에 대한 가능성을 담는 중요한 매체가 되는 것이다.

    

작가의 그러한 생각은《Gates of the world》연작에서 잘 드러난다. 2011년부터시작된 이 연작은 문의 형태를 지니며, 실제로 전시공간의 문이라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철골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작업들은 마치 철창을 연상케 하는데, 일견무거운 질감과 더불어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비장하게 전달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그 외형은 단단한 철창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허술해 보이며 그 안에 담긴 메시지들은 누구든 일상에서 한번쯤 떠올려 보았을 법한 이야기들 이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단편들을 마주한다. 왜생겨나고 사라지는지, 그 경계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것들은 곧바로 우리를 향한 어떤 보이지않는 벽이 되어 세워진다. 그렇게 모호함이라는 벽 앞에 선 채로 우리는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못한다. 작가는 이러한 일상 속 단편들을 철창의 형상을 통해 표현해 놓았다. 작가는 무겁게 옥죄어 오지만 결국에는 열림의 기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임을 말하면서 아이러니한 상황과 함께 자유의지에 대한 유의미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아이러니를 통해 생겨난 곤란하고 유머러스한 사태를 바라보며 작가와 관객은 무작정 무언가를 떠올리고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작가와 관객이 자신을 절대적인 위치에 올려놓고 즐기고 있는 자의적 유희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자기 자신과 공간 자체를 포함한 공간 안의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상황 자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포착하려 했다. 특정 주체의 의식 차원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낭만적 아이러니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프리드리히 슐레겔(F. Schlegel)은 아이러니에서 모순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며 모순이 사라지면 아이러니는 그 존재를 다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그 모순을 ‘자기 창조와 자기 파괴의 변화’라고도 이야기한다. 이 변화는 어떠한 목적을 향한 모습이 그 모습 그대로 부조화와 모순 자체로 남아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꾸며놓은 공간 안에 펼쳐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끝없는 창조와 파괴를 전개하는 기표들의 ‘멈추지 않는 움직임’ 그 자체가 된다. 작가는 현실에서 집어낸 조크를 체화 시킴으로써 조크를 현실에 있게 한다. 이것은 또다시 현실이 된다. 유연하게 확장하는 현실인 것이다.

문두성, 대안공간 루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