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뉴욕에서 팬데믹과 번아웃을 경험한 작가 요이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로 이주한다. 다음 해 봄 고이화 해녀가 살았던 집에서 언러닝 스페이스를 시작한다. ‘물, 여성, 제주’를 주제로 하는 예술 교육과 돌봄 프로그램을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과 함께 진행한다. 전시 <내가 헤엄치는 이유>는 작가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우고 언러닝 스페이스를 운영하며 이웃 해녀 할머니에게 배우는 삶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Double Gaze와 Auspicious Practice는 스트레스성 자가 면역 질환으로 인해 탈모를 겪고 있는 여성에 관한 영상 작업이다. 이 여성과 작가는 스스로 느끼는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과 무기력함, 번아웃의 근원과 근본적 치유에 대해 질문한다. 원형 탈모로 인해 듬성듬성한 머리를 한 채 여성은 기 치료, 약초 치료, 마사지 등 다양한 치료를 서울 곳곳에서 시도한다. 제 질병을 감추기 위해, 여성의 외적 모습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추어 가발을 쓰기도 한다. 작가는 제 가족,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제 위치와 뿌리를 찾아가며, 제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Water remembers는 고이화 해녀에 관한 4-채널 사운드 작업이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소리가 모여 파도 소리가 되고, 거세지는 빗물과 폭풍우, 거대한 파도의 사운드가 더해져 꽉 차인 기계적인 번아웃 상태의 사운드로 전환된다. 제 몸을 풍덩 바다에 던지는 사운드와 함께 동네 해녀 할머니들은 고이화에 관한 제 기억을 말하기 시작한다. 고이화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면서, 여든이 훌쩍 넘은 해녀 할머니가 그 노래를 따라서 부르는 사운드가 더해진다.
1915년 우도에서 태어난 고이화는 아홉 살 때부터 물질을 시작해서 스물두 살 때 결혼해 하도리로 이주했다. 해녀 군軍 중에서 최고인 ‘대상군’이었고, 해녀 항일 운동을 하여 제주 1호 해녀상을 받았고, 제주의 최고령 해녀로 활동했다. 동네 할머니들이 기억하는 고이화는 테왁/망사리를 잘 못 만드는 해녀에게 대신 만들어 주고, 물질 못하는 해녀에게는 망사리에 소라 몇 개를 넣어주던 정 많은 인물이었다. 빗물 한 방울이 내 몸에 스며들어 다시 눈물이 되어 흐르고, 양수에서 태어나 다시 바다에 뛰어들 듯, 이웃 해녀 할머니들은 그들의 삶과 기억을 전하며, 또 다른 연결을 만들어 낸다. 공식적인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그의 개인 서사를 느슨하게 엮어낸다.
전시 제목 ‘내가 헤엄치는 이유’는 조앤 디디온이 1976년에 쓴 글 <내가 글 쓰는 이유>를 차용했다. 조앤 디디온은 말한다. “당시 내가 아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닌 것들뿐이었고, 내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작가였다. 좋은 작가나 나쁜 작가가 아니라, 단순히 종이에 단어를 정리하는 일에 골똘히 열정적으로 시간을 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2채널 영상 작업 <내가 헤엄치는 이유>는 제주에서 바다 수영을 배우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바다 건너편의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갖는다. 입시 경쟁에 시달린 십 대, 오랜 번아웃의 상황과 침묵을 깨고, 말하는 법과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나 자신에 관한 서정적인 편지다.
요이의 예술 실천은 하이드로 페미니즘에 관한 작가의 연구와 맞닿아 있다. 지구와 인간은 70%의 물로 구성되며, 인간은 태아 때부터 양수 속에서 살았다. 지구의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해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하이드로 페미니즘은 인간을 개별적 존재가 아닌, 물과 함께 지구의 다른 생명체와 연결된 존재라 본다. 작가는 이웃에 사는 해녀 할머니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몸과 바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탐구한다. 작가는 80대에 혼자 살며 여전히 물질을 함께 하는 해녀 할머니의 일상을 돕는다. 해녀 할머니는 제 몸이 바다와 연결되는 토착적 방식을 요이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작가는 제가 강요받았던 서구식 교육과 관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설치 작업 <불턱>은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바람을 피해 불을 쬐며 쉬는 제주 바닷가에 있는 불턱 공간을 모티브로 한다. 해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작업을 의논하고 결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하이드로 페미니즘 관점에서 물과 나의 관계를 질문하고, 엘렌 식수가 제안한 여성적 글쓰기의 다양한 방법을 관객과 함께 실험할 것이다. 고독한 사유의 시간과 여성적 연대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불턱을 전시를 통해 제안한다.
글: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요이 (b. 1987-)
하이드로 페미니스트의 시선에서 물과 여성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그간의 사회 구조에서 발화되지 못했던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어 엮는 ‘여성적 글쓰기’를 실험한다.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쿠퍼 휴잇 디자인 미술관, 뉴욕 주립 대학교, 런던 예술대학교, 네덜란드 캐스코, 한국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등에서 다양한 종류의 협업과 강의를 했다. 큰 기관들과 일을 하면서 느낀 목마름은 다양한 문화와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공공 예술과 커뮤니티 예술 프로젝트들로 이어졌다. 예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프로젝트 <그녀에게서 온 일흔 네 통의 편지 Seventy-four letters from her>를 기점으로 한 여성의 정체성을 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기반한 다양한 시점으로 바라보며, 개인의 위치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 정치, 생태적 환경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질문하는 작업을 만들며 작가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안적인 방법의 예술활동을 모색하며 최근 성평등 동화책 시리즈를 공저하기도 했다. 예술 작업에 기반한 리서치, 리서치에 기반한 예술 작업을 통해, 예술가, 교육자, 연구자로서의 활동을 균형 있게 이어가고 있다.
Yo-E Ryou (b. 1987-)
Yo-E Ryou is an artist, educator, and researcher, currently based in Jeju Island, Korea. Traveling from micro to macro, individual to collective, and through ecological perspectives, her work weaves untold stories coming from deep within the body. Currently drawing on artistic and ethnographic research around the disappearing cultures of haenyeo, free-diving women, she explores different forms of ‘women’s writing’ (écriture féminine) and hydrofeminist ethics in engagement with indigenous knowledge and practice of local haenyeo communities. She has taught and collaborated with various organizations internationally, including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ooper-Hewitt Design Museum,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urchase College (US), London College of Arts (UK), Het Nieuwe Instituut (NL), Paju Typography Institute (KR), to name a few. As part of her endeavor to amplify the conversation beyond established institutions, she has facilitated various public art and community art projects and has also co-authored a series of gender equality children’s books. She holds a BFA from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and an MFA from Yale University.